제   목 신중현기타헌정기념콘서트 -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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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기간 2010.06.26(토) ~ 2010.06.27(일)

공연장소 제주문예회관 대극장

6월 26일(토)7시30분

6월 27일(일)6시



<신중현의 음악과 인생>



가난 속에서 싹 튼 신화

신중현은 1938년 1월4일 서울 중구 신당동에서 태어났다.
이발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이주한 만주 신징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그는 해방이 되자 귀국열차를 탔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서울에 정착했던 그의 가족들은 다시 충북 진천으로 피난을 갔다. 동네 밖 움막에서 살며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해 사이를 두고 연이어 세상을 떴다. 이어 여동생도 영양실조로 죽고말았다.
초등학교 5학년 되던 해, 하나 남은 남동생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온 그는 그 때부터 생계를 위해 노동을 해야했다. 새벽 6시부터 밤 12시까지 고된 노동으로 모은 돈으로 기타를 사고 외국책들을 파는 서점에서 산 교본을 보며 독학으로 기타주법을 익히기 시작한다. 또 남대문시장에서 산 미군 통신용 무전기로 AFKN 방송을 통해 미국 음악을 들으며 ‘선진음악’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미제 어쿠스틱 전기 기타를 처음 갖게 된 것은 동양중학 2학년 때다. 야간부인 서라벌 고등학교로 진학한 뒤에도 새벽 6시부터 오후 4시까지 중노동을 이어졌고 수업이 끝난 밤11시부터 새벽 1시까지 다시 공장에 나가 일을 했다. 그런 와중에도 쉬는 시간과 식사시간에는 끊임없이 기타에 매달렸다.
그 시절 그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더라도 기타의 명인이 되고 싶다”는 일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결국 1959년 고교 2학년 때 자퇴를 하고 공장도 그만두었다. 그가 종로 뒷골목의 기타학원을 순회하며 자신의 기타연주를 선보이자 뛰어난 기타리스트의 등장에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한 음악학원에 특채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기타를 배우려고 그를 찾아왔던 미8군 소속 쇼단 무용수의 소개로 신중현은 드디어 한국 록음악의 발상지인 미8군 무대에 입성하게 된다.


기타 달인의 출현

키가 작은 신중현은 미8군 무대에서 재키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그는 무대에 서는 시간을 빼놓고는 연습실로 지정된 원효로의 ‘화양 엔터테인 에이전시’의 악기 창고에서 기타에 빠져들었다.
철문으로 꽉 닫힌 그 칠흑 같은 창고 속에서 아침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손가락에 피가 맺히는 연습이 계속됐다. 그것은 스스로 자청한 고행이었고 수도의 길이었다.
미군들 사이에 서서히 그의 이름이 알려졌고 1960년 용산역 부근 미 정보부 소속 ‘시빌리언 클럽’에서 첫 번째 그의 기타 독주무대가 열렸다. 악보도 없이 클럽 책임자에게 건네받은 45회전 싱글음반을 듣고 연습한 곡이었다. 연주가 끝난 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클럽에 있던 미군 전부가 기립해 환호를 하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것은 이땅에 기타 달인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였다.


신중현 사단의 탄생

이화여대 교수 등을 지낸 이화숙 교수에게 작곡법을 사사받은 신중현은 1962년 우리나라 최초의 그룹으로 기록되는 에드포(Add4)라는 록그룹을 결성한다. 이 팀은 잦은 멤버 교체로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지만 최근 김건모가 리메이크했던 ‘빗 속의 여인’을 발표, 주목받았다.
신중현은 그룹 블루 리본 출신의 드러머와 결혼하고 팀을 해체한 후 미8군으로 복귀해 새로운 그룹을 조직 활동에 들어간다. 이들은 미8군 전속밴드로 록은 물론 재즈와 관련된 음악을 연주해 큰 인기를 누린다.하지만 미8군이 사양길에 접어들자 신중현은 베트남 전쟁의 특수를 이용해 월남으로 갈 준비를 하고 향후에는 유럽으로 진출할 꿈을 키운다. 그리고 월남으로 떠나기 전 그는 마지막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배인순, 배인숙 자매(펄 시스터즈)에게 만들어 준다.
이 음반에서 ‘님아’와 ‘떠나야 할 그사람’ 등이 크게 히트하고(이 판은 무려 백만장이 팔려나갔다) 트로트 주도의 가요 시장에 록음악의 한줄기 빛을 내리 쬐었다. 이를 계기로 우리 음악 시장에 대한 가능성을 감지하게 된 그는 월남행을 포기하고 신중현 사단이라는 스타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신중현 음악 르네상스를 꽃피우다

그는 이후 장미화, 박인수, 이정화, 김추자, 펄 씨스터즈, 임성훈, 장현, 바니걸스, 김정미 등의 가수를 수퍼스타로 만들며 당대 최고의 작곡가이자 프로듀서로 명성을 날린다. 이들의 앨범에는 가수 이름 옆에 꼭 신중현 작.편곡집 이란 말이 붙었으며 또 그래야 히트했다.
신중현은 작곡가로서 뿐만 아니라 자신의 그룹활동도 계속했다. ‘덩키스’라는 그룹은 ‘봄비’를 타이틀로 음반을 발표하기도 했고 신중현 오케스트라를 결성해 활동하기도 했으며 이태현, 김대환 등과 ‘퀘션스’를 결성, 박인수. 김추자. 송만수. 임희숙 등을 배출한다.
그리고 1973년 말 베이스 이남이(베이스 기타), 김호식(드럼) 등과 ‘신중현과 엽전들’이라는 3인조 밴드를 결성 직접 보컬을 맡는다. 그리고 이해 ‘3천만의 애창곡’으로까지 불리웠던 불후의 명곡 ‘미인’이 탄생했다. 그가 소속돼 있던 지구 레코드사에서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제작을 거부하기도 했던 그 판은 1백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검열과 탄압-언더로 돌아간 신중현

1973년 어느날 그는 청와대로부터 ‘대통령 찬가’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자신의 음악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를 정중히 거절한 신중현은 이후로 온갖 정치적 탄압과 검열로 수난을 당하기 시작한다.
1975넌 12월 ‘퇴폐의 온상’ 처럼 지목돼 오던 신중현은 가요계를 강타한 대마초 사건의 주범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는다. 이후 그의 음악들은 불신감 조장, 창법 저속, 퇴폐곡, 방송 부적합 등 온갖 구실이 붙어 금지곡으로 묶였다. 결국 한국 록음악의 독립군인 신중현과 그의 음악은 그렇게 권력에 의해 강제로 지하에 매장되는 수모를 겪게된다.


끊이지 않는 실험정신과 열정

1978년 공연 활동이 해금되었고 1979년 박정희의 죽음과 함께 모든 활동 금지 조치가 풀렸다.
재기의 활화산 같은 기쁨은 그에게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었고 이러한 기운은 1980년 9인조 록밴드 ‘뮤직 파워’로 탄생됐다. 이들이 연주하고 노래했던 ‘아름다운 강산’은 박정희 찬가를 거부하고 국민을 위한 노래로 만들었던 그의 의지를 발현한 곡으로 순식간에 전국민의 애창곡이 되었다.
이후에도 그는 ‘내’라는 곡으로 우리의 정서와 서양 음악의 화합을 시도하고 ‘그동안’, ‘미소’ 등이 수록된 솔로 음반을 내고 90년대에도 ‘무위자연’과 ‘김삿갓’ 등의 앨범을 발표하는 등 음악적인 실험을 계속해오고 있다.
후배들은 1997년 그의 음악인생 40년을 기념하는 헌정음반을 만들었다. 대한민국 음악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기록될 헌정음반이었다. 이 음반에는 강산에, 시나위, 윤도현, 봄여름가을겨울, 한상원, 이은미, 한영애, 사랑과 평화, 김광민, 김목경 등 대한민국의 내노라하는 가수와 연주자들이 모두 참여했다. 이는 우리 대중 음악의 발전을 몇 단계 끌어올린 그의 노고에 대한 경의의 오마쥬였다.


헌정 기타

미국의 기타전문회사 펜더(Fender)는 2009년 12월15일 신중현에게 기타를 헌정했다.
신중현의 이니셜이 새겨진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기타. 펜더기타를 헌정받은 뮤지션은 세계에 단 6명. 아시인으로는 신중현이 처음이다.
신중현은 마스터 빌더에게 기타가 자신과 같은 인생을 가는 느낌이 들도록 “50여년 내 음악역사를 기타로 표현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렇게 탄생한 신씨의 기타는 스크리치가 있는 빈티지 풍의 검정색 바디와 단풍나무로 된 넥으로 구성됐다. 지판에는 신중현의 사인과 감사와 존경의 뜻이 담긴 ‘트리뷰트 투 신중현’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신중현은 “진실한 기타”, “주면 주는데로 받는 기타다. 내가 슬프면 슬픈 음악이 나오고 즐거우면 즐거운 소리가 나오는 솔직한 기타다”라고 표현했다.
신씨는 또 “남은 인생동안 펜더 기타에 맞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자신의 몸이 다할 때까지 “기타의 진가를 표현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주고 싶다”는 바람을 밝히기도 했다.
선후배 음악인들과 언론에서는 입을 모아 “펜더의 기타 헌정은 한 뮤지션의 영광이 아니라”며 “한국 록음악을 해외에서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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